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역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 (문단 편집) === 제15대 총선 (2002) === ||<-5> 2002년 9월 22일[br]{{{-2 총원: 603석, 과반의석: 302석}}} || ||<-2><#e20019> [[게르하르트 슈뢰더|{{{#fff '''슈뢰더'''}}}]] {{{#fff '''2기 내각'''}}}[br]{{{-2 {{{#fff '''306석'''}}}}}} ||<-3> 야당[br]{{{-2 297석}}} || ||<#e20019> [[독일 사회민주당|{{{#fff 사회민주당}}}]] ||<#46962b> [[동맹 90/녹색당|{{{#fff 동맹 90/녹색당}}}]] ||<#000000> [[CDU/CSU|{{{#fff CDU/CSU}}}]] ||<#ffed00> [[자유민주당(독일)|{{{#000 자유민주당}}}]] ||<#991000> [[민주사회당(독일)|{{{#fff 민주사회당}}}]] || || 251석 || 55석 || 248석[br]{{{-2 190석+58석}}} || 47석 || 2석 || 지난 선거에서 [[게르하르트 슈뢰더]]는 [[헬무트 콜]]을 '[[실업]] [[독일 총리|총리]]'라고 부르면서 [[독일/경제|경제]] 문제에 화력을 집중하여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. 하지만 슈뢰더의 집권 후 4년이 지난 2002년의 총선에서 경제 문제는 고스란히 [[부메랑]]으로 되돌아 왔다. 슈뢰더 내각 1기 4년 동안 불황은 여전했고, 여기에 [[유로화]] 도입으로 인한 혼란으로 독일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.[* 다만 이때 슈뢰더의 개혁 정책이 이후 독일의 실업률 저하 등에 도움을 주었다는 분석도 있다.] 슈뢰더는 지난 선거에서 [[자본주의]]도, [[사회주의]]도 아닌 이른바 [[제3의 길]] 노선을 주창하여 돌풍을 일으켰는데, 총리 재임 기간 동안 [[독일인|독일 국민]]들은 이에 실망했다. 사민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슈뢰더가 사민당의 전통적인 노선을 버리고 우클릭했다며 분노했고, [[중도주의|중도]] 성향 지지자들은 슈뢰더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추구한다기에 여기에 혹해서 지지했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실망했다. 다가오는 2002 선거에서 슈뢰더 내각은 희망이 없는 듯 보였지만, 선거가 다가오면서 [[이라크 전쟁]] 참전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대중의 지지를 어느 정도 되돌리는데 성공했다. 선거 결과 양측이 초접전이었지만 아슬아슬하게나마 사민-녹색 연정이 신승[* 여기에는 동독 지역의 민주사회당 지지자들이 사회민주당에게 전략적 투표를 한 것도 보탬이 되었다.]을 거두었고 슈뢰더는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. 지난 선거에서 [[동독]] 지역에 의존해 [[봉쇄조항]]을 충족했던 [[민주사회당(독일)|민주사회당]]은 이번 선거에서 동독 지역의 유권자들이 사회민주당을 지지하는 바람에 [[비례대표]] 득표율 [[봉쇄조항]]을 넘지 못 하고 만다. 지역구 당선자도 2명 뿐이라 봉쇄조항[* 정당득표 5% 이상, 지역구 당선자 3명 이상.]의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하여, 정당명부 당선자가 단 한 명도 없이 지역구 당선자 2명 만으로 연방 의회에 참여하게 되었다. 결국 민주사회당은 구 [[서독]] 지역 내 세력 부재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구 서독 지역의 파트너를 찾게 되었고, 2005년 선거에서는 사회민주당 탈당파가 조직한 WASG와 연대하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